'Don't call on Sunday''

"일요일은 쉽니다"




20세기 초, 전기는 종종 만병통치약처럼 광고되었다. 

1902년 시어스 카탈로그에 등장한 하이델베르크 전기벨트는 남성의 사타구니에 연결된 장치를 통해 전류를 흘려보내 정력을 증강시켜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광고에 첨부된 삽화를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1991년 가을, 시어스 카탈로그에 소개된 노바텔 휴대전화는 본체 무게는 0.9kg, 배터리가 장착되어도 3.6kg에 불과한 휴대성을 강조해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이란 최초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성.

이 곳은 현대 이란의 상징으로 여겨진 곳으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 북서쪽에 있었다.


1963년, 이스파한의 주민들이 사진을 찍는 미국인 어린이들을 구경하고 있다.


1967년, 이란 부부와 12명의 아이들


1961년, 마잔다란 지방에서 결혼식을 앞둔 커플


1960년대, 이란 남부 후제스탄주에서 차도르를 입은 여성과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함께 걷고 있다.


1963년, 쉬라즈를 여행 중인 부부. 뒷쪽에 보이는 건물은 페르시아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하페즈의 영묘이다.


1961년, 보루저디(Borujerd)광장의 주민들. 뒷편으로 다리우스(Daryoush)극장이 보인다.


테헤란 근교의 압 알리(Ab-Ali)리조트. 1932년 리프트가 설치된 이란 최초의 스키장이다.


1960년대, 테헤란 레이(Rey)에서 카펫을 세척하는 주민들. 


1960년대, 테헤란 레이(Rey)를 방문한 미국 관광객들이 카펫을 건조하는 언덕을 올라가보고 있다.


1960년대, 테헤란 레이(Rey)의 카펫 건조


1970년, 타흐테 잠쉬드(Takht-e Jamshid)대로. 혁명 후 탈레그하니(Taleghani)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60년대, 파르수주의 페르세폴리스


1965년, 테헤란의 어린이들


1965년, 테헤란 미국인학교.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의 실각 후 건립되었다. 

이 학교는 1977년까지 미국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인 학교였다.


1960년대, 서부 이란 로레스탄주 Aligudarz 마을에서 수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1968년, 이스파한 보건학교의 여학생들


1965년 겨울, 테헤란 공원에서 손자와 할아버지



1918년, 구멍난 헬멧을 들고 미소 짓는 영국 군인의 미소.

사진과 함께 첨부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헬멧은 파편으로부터 구해줍니다. 이 군인은 응급치료를 받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그의 생명을 구해준 헬멧을 들고 있습니다."


당시 전쟁에서 헬멧은 포탄 파편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초기에 헬멧을 쓴 군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국가의 군인들은 천으로 만들어진 전투모를 착용했다. 

1915년 영국군 사상자의 65%가 적 포병으로부터의 머리 부상이었기에 이 한 장의 사진은 헬멧의 중요성에 대한 선전자료로 넘치고도 남았다.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Finis Davis, 1808~1889)는 미시시피주 상원 의원으로 1861년 남부 여러 주의 연방 탈퇴에 즈음하여 남부연합(아메리카 연합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861년 2월 18일 취임식을 가졌다.

1865년 남부의 패전 후 1865년 5월 10일 새벽, 조지아 주 어윈빌에서 포로로 잡혔으나 1868년 석방되었고 여생을 남부의 부흥에 힘을 썼다.


1950년대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팀이었다. 1952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매직 마자르(Magic Magyar)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헝가리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특히 결승전 상대는 예선에서 8:3이라는 스코어로 대파한 서독이었다. 



이에 헝가리는 월드컵 우승 기념우표까지 발행하며 설레발을 떨었는데, ‘베른의 기적’을 연출한 서독 팀에게 2-3으로 패배하며 아쉽게 우승컵을 내주었다.

하지만 헝가리는 준우승 국가임에도 페렌츠 푸스카스가 MVP, 산도르 코치슈가 11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팀 전체로는 무려 27골을 득점하며 한 대회 최다골 기록을 수립하였다.

반면 전쟁의 참화를 딛고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은 최강 헝가리를 상대로 9골을 내주는 등 도합 2경기 16골을 내주며 한 대회 최다 실점을 기록했다.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의 제1대 대통령인 조하르 무사예비치 두다예프(Дудин Муса-кӀант Жовхар) 1991년 11월 소련이 무너지자 체첸의 독립을 선포하고 러시아 군에 맞서 4년간 1차 체첸 내전을 벌인 인물로, 체첸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1996년 4월 21일, 수도 그로즈니에서 전화 통화와 주파수를 통해 위치를 추적한 러시아 공군의 미사일에 맞아 전사했다. 사진은 유도미사일이 발사되기 직전의 화상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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