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斷頭臺)를 이용한 프랑스의 마지막 공개처형은 독일 출신의 범죄자 오이겐 비드만(Eugen Weidmann)이었다. 여섯 건의 살인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은 그는 1939년 6월 17일, 베르사유 감옥 앞의 생피에르 거리에서 단두대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


오이겐 비드만(Eugen Weidmann)


오이겐 비드만(Eugen Weidmann)


공범 로저 밀리옹(Roger Million).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로저 밀리옹의 애인 콜레트 트리코(Colett Trico). 20개월형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첫번째 희생자 장 드 코번(Jean de Koven): 미국인 여행객. 살해 후 현금 300프랑과 여행자 수표 430달러 강탈


장 드 코번(Jean de Koven). 교살당한 후 정원에 묻혔다.


두번째 희생자 조제프 쿠피(Joseph Couffy). 운전수로 고용되었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죽었다. 2,500프랑 강탈


경찰에 발견된 조제프 쿠피의 차량


세번째 희생자 재닌 켈러(Jeannine Keller) : 간호사. 살해 후 현금 1,400프랑과 다이아몬드 반지 강탈


네번째 희생자 로저 르블롱(Roger Leblond). 연극 프로듀서. 살해 후 5,000프랑 강탈


다섯번째 희생자 프리츠 프뤼머(Fritz Frommer). 유대인사업가. 살해 후 첫번째 희생자와 같은 마당에 묻힘.


여섯번째 희생자 레이몽 르소브(Raymond Lesobr). 부동산 중개인. 살해 후 5,000프랑 강탈


범인을 체포한 경찰들


체포 후 이송되고 있는 오이겐 비드만 


체포 후 이송되고 있는 오이겐 비드만 


체포 과정 중 부상당한 모습


압수된 범행도구를 살펴보는 경찰


마당에서 발견된 장 드 코번의 시신을 관에 담아 옮기고 있다.


장 드 코번과 크뤼머의 


범행현장으로 끌려가는 오이겐 비드만


재닌 켈러를 살해한 범행현장


재닌 켈러를 살해한 퐁텐블로 숲에 서 있는 오이겐 비드만


현장 검증 후 기자회견에 답하는 경찰


증거물들을 살펴보는 경찰


연쇄살인범 오이겐 비드만의 지문


재판을 받고 있는 오이겐 비드만


재판을 받고 있는 오이겐 비드만


재판을 받고 있는 오이겐 비드만


콜레트 트리코와 변호사


재판정의 서기


몰려든 기자들


법정에 전화선을 설치중인 모습


사형 판결 후 판사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군중


단두대를 둘러싼 군중들


감옥에서 끌려나오는 오이겐 비드만. 시신을 담을 관뚜껑이 열려있다.


단두대의 칼 아래에 결박되는 오이겐 비드만


사형 집행 몇초 전의 모습


칼이 떨어지는 순간


집행 후 단두대를 해체중인 모습



결과적으로 이 사형집행은 프랑스의 마지막 공개처형으로 남았다. 그 이유는 사형집행시 여러 건의 돌발 상황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공개처형을 보고자 몰려든 구경꾼들은 범죄자에 대해 난폭함과 분노를 표출해 자칫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또 단두대의 조립이 잘못되어 집행 시간이 지체되는가 하면, 사형집행을 몰래 촬영하는 일까지 발생했다(덕분에 이 영상은 오늘날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결국 알베르 르브륑(Albert Lebrun) 대통령은 공개처형을 영원히 금지시켰고, 1981년 9월 9일을 기해 프랑스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른다.(단두대는 사형제도 폐지전까지 비공개로 사용되었다)


한편, 반지의 제왕 사루만으로 유명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1922~2015)는 이 공개처형을 직접 목격했다고 자서전에서 전한 바 있다. 당시 나이 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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